교통실태 벤치마킹 한다면서 프라하성 달려간 지방의원들

‘가이드 폭행’ 후 해외연수에 국민 공분
관광성 외유·셀프심사 고질적 병폐 여전
"보고서 안낸 것도 의원 특권" 비난 봇물

사상 최악의 물난리 속 외유성 유럽연수를 떠나고 이를 비판하는 국민을 '레밍(쥐의 일종)'에 빗댄 발언을 해 공분을 산 김학철 전 충북도의원이 2017년 7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당대표까지 외면…관광성 연수 떠난 시의원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난항을 겪던 지난해 10월 24일. “광주형 일자리의 불씨를 살리겠다”며 이해찬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광주시의회를 찾은 날 시의원 8명이 해외로 떠났다. 광주시의원 23명 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당시 시의원들은 6박8일 일정으로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의 관광지 등을 다녀왔다. 비난이 쏟아졌다. 광주형 일자리와 광주지하철 2호선 착공 결정 등 현안이 산적한 상태에서 해외로 간 사실이 알려져서다.

당시 시의원들은 “2019년 7월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성공개최 방안을 찾겠다. 이미 일정이 잡혀 있어 변경이 어렵다”며 연수를 떠났다. 2017년 세계수영선수권이 열린 부다페스트 방문과 선진 교통실태 등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지는 체코 프라하교통공사나 수영대회 관계자 면담 등 4곳 외에는 프라하성과 오스트리아 쇤부른궁전 등 유명 관광지로 채워졌다.

“지진과 지열발전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겠다”며 떠난 해외연수가 상당 부분 ‘외유’인 사실이 드러난 적도 있다. 포항시의원 15명은 지난해 10월 29일부터 6박8일간 독일과 스위스를 다녀왔다. 독일 란다우 지열발전소와 폐쇄된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를 찾아 지진 발생과의 상관관계 등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다. 의원들은 총 4800여만원을 들여 독일 란다우를 찾았지만, 지열발전소 현장에는 한 시간도 채 머물지 않았다. 바젤 지열발전소는 ‘섭외가 안 된다’는 이유로 아예 찾지도 않았다.
경북 예천군의회 박종철 의원의 폭행 장면. [연합뉴스]

연수 적정성도 스스로 판단…의원들끼리 ‘셀프심사’
외유성 연수는 서울도 예외가 아니다. 민선 7기 들어 서울지역 25곳의 구의회 중 19곳이 세계적인 관광지 위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들 구의원이 ‘관광자원 벤치마킹’을 명목으로 지난해 6·13 지방선거 이후 연수에 나선 곳은 대부분 유럽과 일본·터키·호주·뉴질랜드 등의 관광지였다.

여러번 지적받은 ‘셀프 심사’가 진행되는 곳도 여전히 많다. 부산의 경우 지난해 말 현재 16개 구·군의회 가운데 12곳에서 의원들의 해외연수 심사위원장을 모두 해당 의회 부의장이 맡고 있다. 나머지 심사위원도 대부분 구·군 의원과 의회 사무국 공무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예천군의회의 경우 매년 해외연수 계획서와 심사위원회 회의록을 베끼다시피 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서로 다른 사람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경북 예천군 주민들이 지난 11일 예천읍 중앙로에서 해외연수 도중 ‘가이드 폭행사건과 접대부 요구 의혹’을 일으킨 박종철 예천군의원을 비롯한 군의원 전원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연수계획서 베끼기·늑장 제출도 속출
인천 서구의회에서는 지난해 11월 6~12일 진행한 오스트리아·독일 연수 보고서를 지난 9일에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서구의 경우 자치법규상 귀국 15일 이내에 보고서를 의장에게 제출한 뒤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돼있다. 이를 놓고 의회 안팎에선 “경북 예천군의회 박종철 의원의 폭행 사건이 알려진 뒤 보고서를 게재했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6·13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1년 치 해외연수 예산을 모두 사용한 곳도 있다. 전북 진안군의회와 장수군의회, 부안군의회는 ‘2018년 해외연수’ 예산을 지난해 초 전액 사용했다. 의원들이 바뀔 가능성이 높은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선배 의원들이 후배 의원들이 가야 할 연수 비용을 모두 써버린 것이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보고서도 제대로 안 쓰고 해외연수를 가는 것 자체를 특권이라 생각하는 의원들이 있는 한 관광·부실 연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박종철 의원의 폭행 사건 이후 해외연수 도중 돌아오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경북 시·군의회 의장 18명 등 40여명은 지난 9일 3박5일 일정으로 베트남으로 외유성 연수를 떠났다가 비난이 일자 조기 귀국했다. 인천 계양구의원 4명도 지난 9일 8박9일 일정의 호주·뉴질랜드 연수를 떠났다가 비난 여론에 12일 조기 귀국했다.

경북 예천군 주민들이 지난 11일 예천군의회 앞에서 해외연수 도중 ‘가이드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종철 의원을 비롯한 군의원을 잘못 선출한 책임에 대해 108배를 올리고 있다. [뉴스1]
박종철 사건 후 부랴부랴 중도 귀국…강행하는 의회도
하지만 박 의원의 폭행 사건 이후에도 해외연수를 모두 완료한 곳도 있다. 경기도 중부권의장협의회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관광 일정 위주의 베트남 연수를 다녀왔다. 이 협의회는 의왕·광명·부천·안산·안양·시흥·군포·김포·과천 9개 시의회 의장단으로 구성됐다. 경기북부 시·군의장협의회 소속 의장 9명도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말레이시아로 국외 출장을 다녀왔다.

충북도의회는 오는 3월 유럽 해외연수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충북도의회에선 이미 2017년 7월에도 연수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도의원들은 청주에 29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상황에서도 연수를 떠났다가 비난을 샀다. 당시 김학철 도의원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국민을 쥐의 일종인 ‘레밍’에 빗대 폄훼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했다. 이정희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보다 면밀히 살피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지금보다 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며“정보통신기술과 시민 활동을 결합한 상시 감시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예천·인천·경기=최경호·김윤호·최은경·김민욱 기자, 박형수·김다영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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