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고향으로 돌아간다?…나는 일본에 뼈 묻겠다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41)

2015년에 쓴 『일본 남자여도 괜찮아』라는 책에 ‘나는 죽어서 어디로 갈까’라는 내용이 있다. 이를 읽은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사람과 결혼을 해서 갔으면 그곳에 뼈를 묻을 생각을 해야지”라고. 그때까지도 나는 죽어서 어디에 묻히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좀 있으면 일본 생활 30년이다. 일본에 뼈를 묻을 각오가 섰다. 일제 강점기를 제외하면 역사상 가장 관계가 악화한 이 시기에 말이다.

타국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면 생각할 것이다. 나는 죽어서 어디에 묻히고 싶은가. 나 또한 고민이었다.한국의 고향에 묻히면 누가 관리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돌아간다면 화장해 바다에 뿌리라고 할 생각이었다. 한 곳에 다 들어가는 일본의 묘 풍습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시집 식구들과 섞이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다. 장녀라 그런지 가족이라는 범주 내에 친정 식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도 한몫했다. 내가 일구어낸 가족보다 친정을 더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대체 결혼이라는 것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었는가.




일본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 죽을 때까지 살아갈 집 상태가 보였다.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제 나는 지금 사는 집을 '오막살이 집 한 채'로 꾸미기 시작했다. [사진 Pxhere]






나는 한국인으로서 고향으로 돌아가 묻히는 것보다 내 아이들의 어미로서 일본에 남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힘들 때 찾아와 넋두리하고 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 어미가 없는 묘보다는 어미가 있는 묘가 훨씬 나을 것이기에. 그리고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게 해 준 남편 곁에 있어 주고 싶다.

일본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 죽을 때까지 살아갈 집 상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 관리해야지. 새로 짓는 것보다 잘 관리하면서 사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옳거니! 요즘 집수리로 정신이 없다. 지금까지는 집에 돈 들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모아서 고향인 제주도에 오막살이를 짓고 살 생각을 했었다. ‘꽃밭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며 살아야지. 일본에서 살아온 경험을 살려 일본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조언도 하며 살아야지.’ 그게 40대 중반부터의 꿈이었다. ‘제주도에서 살아보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컸다. 50대 중반. 이제 나는 지금 사는 집을 ‘오막살이 집 한 채’로 꾸미기 시작했다.

집수리는 나의 마지막 삶터를 준비하는 일이다. 버리고 떠나려 했던 집이지만, 80대가 되어도 내가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집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결혼한 이래 쭉 살아온 집. 처음부터 시부모와 함께 해왔다. 두 아이를 낳아 길렀다. 시어머니는 먼저 가셨지만 94세를 맞이하는 시아버지는 가벼운 치매기는 있으나 정정하시다. 시부모와 같이 산 덕분에 아이를 키울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공을 지금 시아버지에게 돌려드리고 있다. 속에 열불이 나는 일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옛일이 된다. 그리고 너그러워진다. 모든 걸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있다.

문득 수년 전 시아버지와 싸웠을 때 일이 떠오른다. “내 말 듣지 않으려거든 남편까지 싹 데리고 이 집에서 나가라.” 결국 경제적인 이유와 독자인 남편의 설득으로 눌러앉았다. 그때 내가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래, 그토록 소중한 아버님의 집을 내 것으로 만들고 만다.” 이제 집수리가 끝나면 이 집은 거의 내 색깔로 물들게 된다. 말이 씨가 되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격인가? 모든 것은 길게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일본에서 살아온 세월이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시간보다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2의 고향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일본사람들 속에 스며들며 살아왔다. 이상하게도 고향에서 살 때보다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를 설명하는 것으로는 ‘한국에서 왔다’라는 것으로 끝났다. 학연, 지연, 집안 등의 조건을 물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자유로웠다.




일본에서 살아온 세월이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시간보다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고향에서 살 때보다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사진 Wikimedia Commons]






사회인으로 세상에 나오면서 시작한 일본 생활. 한국으로부터 비난과 욕을 바가지로 먹는 나라. 깔끔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과거. 알면 알수록 속이 터질 것 같은 양국의 역사. 그렇다 해도 일본은 내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라이다.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 준 나라이다. 그야말로 제2의 고향이다.

마음 놓고 일본 욕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속 편할까를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인 남편과 일본인인 두 아들을 둔 한국인. 일본인 친구도 많다. 나에게 친절하게 해 준 사람을 어찌 미워할 수가 있으랴. 미워할 수 없다.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갈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응어리를 풀 수 있다면, 먼지보다도 가벼운 힘이나마 쏟고 싶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전체가 일본을 미워해도 나만은 미워할 수가 없다. 내 아이들과 한국의 아이들이 싸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시원한 마음으로 선입관 없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오늘의 핫이슈

핫딜 더보기

이 글을 공유하려면 링크를 복사하여 붙여넣으세요.
복사를 누르시면 자동 복사 됩니다.